쉴 새 없이 뿌연 연기를 피워 올리는 공장굴뚝이 즐비한 부산의 신평공단. 분주히 오가는 지하철은 회색 빛 외투를 둘러 쓴 사람들을 줄지어 토해낸다. 지하철 승강장,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곳에 위치한 조그만 가판대 창문을 통해 세상을 엿보던 성국의 시선에 어느 날 조금은 다른 색깔의 선우가 나타난다. 짜증과 분노가 뒤섞여 폭발해 버린 어느날, 두 사람은 삐걱거리는 걸음으로 길 위에 섰다. 한겨울에도 좀처럼 눈 구경 한 번 힘든 부산엔, 오늘도 구슬픈 빗방울에 짙은 잿빛으로 물든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