서른네 번째 생일을 앞두고 나는 갑작스러운 복통에 응급실을 찾는다. 단순한 맹장염일 것이리란 나의 예상과 달리 자궁과 난소, 대장까지 전이된 암이 발견되고 긴급하게 수술을 받는다. 항암치료를 시작한 뒤 온몸의 감각이 파괴되고 익숙했던 일상이 완전히 뒤바뀌는 일을 경험하게 된 나는 그 과정에서 문득, 8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린다. 신장암 투병 중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며 그 순간을 카메라로 기록했었지만, 정작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. 이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나는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 손에 카메라를 든다. 배꼽부터 회음부까지 절개된 25cm의 수술 자국이 바꾸어 버린 나의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. 그리고 죽음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마주하기 위해.